2009년 8월 11일 화요일

[딘/카스티엘] 사랑은 한결같아라 (3/9)



 제목: Love Remains the Same
 작가: blackdoggie1
 구분: 번역
 장르: Slash
 페어: Dean/Castiel
 등급: PG-13




"어휴, 빌어먹도록 끔찍했어!"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샘이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너 말 한번 잘했다!" 딘이 등 뒤로 문을 꽝 닫으며 대꾸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티격태격했다. 그러는 동안 자기 코트는 쇼핑을 하다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딘의 코트를 덮은 카스티엘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서 뒷자리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날 오후는 계획대로 잘 흘러가지 않았다. 쇼핑몰은 붐볐고 카스티엘은 한 고비를 넘자마자 다른 장애물에 걸려 멈칫거리면서 시시각각 점점 더 갈팡질팡하였기에, 딘은 처음부터 내켜 하지 않았던 자신이 옳았다고 느꼈다. 혼자 있었다면 딘이 대처할 수 있었겠지만 그가 개입해서 반려자를 도우려 할 때마다 샘은 곧장 끼어들어 딘에게 잔소리를 했다.

맨 처음은 옷가게였다. 거기서 샘은 캐스에게 두루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이윽고 그들은 천사가 패션 감각이 썩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무척 후진 색깔과 무늬로 된 옷이 있는 쪽으로 곧장 향했다. 딘은 캐스가 어떤 옷이 세간에서 괜찮은 패션이라 통하는지 아직 잘 모르는 탓에 옷이 괴상망측하면 할수록 '고와서' 그냥 눈에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도움이 되려고, 카스티엘이 어울리는 옷을 입고 다니도록 거들어 주려고 딘은 그의 옷을 대신 고르기 시작했다. 캐스는 딘이 물건을 사도록 양보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샘 눈에 이 모든 행동은 너무 독선적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가 입고 싶은 옷을 고르게 놔 둬!"

"임마. 그는 페이즐리 셔츠에다 돌바지를 골랐다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너는 그가 히피 같아 보였으면 좋겠냐 샘?"

"나는 그가 입고 싶은 대로 입었으면 좋겠어. 그는 스스로 옷을 고를 수 있다고. 이상한 옷을 좋아한들 뭐 어떤데? 그가 자유의지대로 하게 내버려 둬 형. 그는 옷 갈아입히는 인형이 아니라고!"

"거 참 멋진 생각이다 샘. 그가 광대처럼 입고 다니도록 하자고. 그럼 사람들은 모두 그를 빤히 쳐다보겠지. 퍽이나 그가 기분이 나아지겠다. 퍽이나 그가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겠고."

물론 그것은 하루 종일 계속될 말싸움의 서막에 불과했다. 가게마다, 카스티엘이 필요한 물건 하나하나를 살 때마다 그들은 빼놓지 않고 언쟁을 벌였다. 신발에서 샴푸까지... 사실 속옷에 이르기까지. "그가 직접 선택하게 놔 둬 형!" "나는 도우려는 거야 샘!"

가끔 카스티엘이 어떤 물건을 보고서 가격이 저렴한가 물으면 샘은 적정가가 얼마인지 그에게 알려 주려고 했다. 그러나 딘은 그때마다 끼어들어서 자신이 대신 신경을 쓸 테니까 캐스는 그런 것 몰라도 된다고 말하며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면 물론 샘은 자꾸만 그가 의존하도록 한다, 그를 어린애 취급한다, 묻는 것도 가르쳐 주지 않잖느냐 운운하며 거듭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날 오전은 내내 그런 식으로 지나갔다. 샘은 잔소리를 하고, 딘은 불만을 토하고, 카스티엘은 그저 점점 더 움츠러들기만 했다. 말다툼을 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딘마저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카스티엘을 하고 많은 곳 중에서 하필 쇼핑몰로 끌고 나온, 특히나 샘도 같이 데려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쇼핑몰에서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과부하가 걸린 카스티엘은 그들이 싸우자 더욱 불안해 할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천사에게 너무 과중한 부담이라고 딘은 생각했다. 그리고 카스티엘이 움츠러들면 들수록, 딘은 한층 보호 태세가 되었고, 뒤이어 샘은 더욱 신경질을 냈다. 악몽 같은 하루였다.

마침내, 그들은 가까스로 카스티엘에게 새 옷 여러 벌과, 혼자 쓸 세면도구와, 다음부터는 얼굴을 베이지 않도록 전기면도기까지 사 주었다. 캐스는 완전히 지칠 대로 지쳐 보였기에 딘은 그들이 드디어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조용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여기며 안도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샘은 배가 고팠다. 샘은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샘은 시내를 벗어나 집에 가는 도중에 일부러 드라이브스루에 들른다는 귀찮은 짓도 할 수 없었다. 샘은 이 망할 놈의 푸드코트에서 식사해야 했다. 그리고 샘은 카스티엘에게 첫 외식을 시켜 주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한바탕 싸운다면 카스티엘이 겪는 악몽이 길어질 뿐이라고 생각하고서, 딘은 그러마고 했다. 그들은 반갑게도 푸드코트 구석에 떨어져 있는 한산한 서브 샌드위치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딘은 적어도 식사는 별 탈 없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마음을 놓았다. 일은 그 순간부터 나빠지기만 했으니까. 그들이 줄을 선 곳 바로 뒤엔 토박이 시골뜨기가 분명한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다. 카스티엘이 우연히 그들에게 부딪치자 그들은 그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기로 작정하였다.

"썅, 뭐야?" 한 농부가 날카롭게 말을 뱉었다.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미처 몰랐던 카스티엘은 어리둥절해 하며 돌아서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말씀입니까?"

"그래 너 말이다 반반한 놈아. 젠장 좀 보고 다녀!"

카스티엘은 그저 미간을 찌푸리며 그 남자를 계속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딘은 그 표정을 알았다. 인간이 하는 어리석은 짓을 이해해 보려 애쓸 때 그가 짓는 표정이었다. 전직 천사는 왜 그 남자가 그리 화를 내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딘은 끼어들어 그 시골뜨기의 정면으로 나서며 대신 대답했다.

"무슨 빌어먹을 문제라도 있나, 친구?"

카스티엘은 혼란에 빠진 채 격앙된 말이 오가는 광경을 한켠에서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그 시골뜨기는 자기 보호 본능이 온전히 있었기에 딘의 불타는 눈초리와 샘의 덩치를 번갈아 보고선 물러나서 다른 데로 가 식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가 사라지고 나자 샘은 딘을 향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는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엔 항상 그랬듯이 딘의 등 뒤에 서서 힘을 보탰지만, 일을 그렇게 끝내 버린 데에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고맙게도 그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난 후 카스티엘이 무슨 샌드위치를 주문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는 것을 본 딘이 끼어들어서 점원에게 "그냥 양상추 토마토 마요네즈 샌드위치 하나 줘요, 귀여운 아가씨."라고 말하자 샘은 다시금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거북하게 식사를 했다. 샘과 딘은 서로를 화난 표정으로 쏘아보았고 카스티엘은 눈을 내리깔고 먹는 둥 마는 둥 끼적거렸다. 이렇게 되자 딘도 샘만큼이나 화가 났다. 망할, 대체 샘은 자기가 뭘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애 눈엔 카스티엘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 보이나? 위축된 게 안 보이나? 쓰레기를 버리러 일어났을 때 마침내 침묵을 깨고 딘이 말했다. "야 임마, 너 대체 왜 그러냐?"

샘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함을 쳤다. "내가 왜 그러냐고? 이야말로 왜 그러는데?"

곧 그는 딘은 너무 소유욕이 강하고 과보호하고, 한마디로 횡포 부리는 멍청이라고 또다시 잔소리를 개시했다. 딘은 물론 곧바로 욕설을 퍼부었다. 얼마나 오래 푸드코트 한가운데에 선 채로 다투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마침내 뒤를 돌아보고서 그는 황겁하고 말았다. 카스티엘이 없었다.

"야, 캐스가 어딜 간 거야? 샘, 그가 어딜 간 거야?"

"아 제기랄!" 샘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외쳤다.

곧 그들은 20분 동안 미친 듯이 그를 찾아 헤매었다. 마침내 그들은 입구 바깥 벤치에 앉아 덜덜 떨고 있는 카스티엘을 찾아냈다.

"캐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우린 죽도록 놀랐다고!"

"미안." 그는 더듬거렸다.

"그런 식으로 돌아다니면 안 돼!"

"이봐 형, 캐스에게 소리 지르지 마!"

"닥쳐 샘! 캐스, 코트는 어디 갔냐?"

"어-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안 나는군." 그는 눈을 내리깔고 이를 딱딱 맞부딪치면서 털어놓았다. "미안하다."

"그럼 자. 내 걸 입어."

"아니야, 난 벌-"

"입으라고 했잖냐 캐스!" 딘이 코트를 둘러 주면서 버럭 소리를 쳤다. "어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차에 캐스를 태우고 짐을 실은 후, 샘은 다시 불만을 끄집어냈고 딘은 고스란히 받아쳤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둘은 지금 바비의 거실에 오기까지 쉬지 않고 소리 높여 옥신각신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딘은 카스티엘이 이미 하루에 견딜 수 있는 자극을 넘치도록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오가는 고성을 듣지 않게 하려고 그를 먼저 짐을 들려서 이층으로 올려 보냈다.

"그는 어린아이가 아니야 형. 그리고 형의 꼭두각시도 아니야! 망할, 이젠 좀 간섭을 느슨하게 해!"

"이젠? 샘, 이주 전만 해도 그는 긴장증에 시달리고 초조해 했다고!"

"그래, 좋아 형. 알아들었어! 하지만 형이 그가 스스로 결정을 하게 단 한 번도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을 거야. 형은 그가 그렇게 되면 행복해 하리라고 생각해? 형은 그가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나는 내가 뭘 하는지 잘 알아 샘! 그리고 어쨌든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카스티엘은 내가 책임져! 내가 보살핀다고! 내가!"

"이런 일은 그만둬야 해 형! 하루 24시간 그를 쥐고 흔들고 커다랗고 멍청한 개를 길들이는 양 그를 대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고! 대체 형은 형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만하면 되었다. 딘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이 뭔지, 이 모든 망할 엉망진창이 카스티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벌써 잘 아는데, 제기랄 그의 동생까지 자기를 이렇게 지랄맞은 기분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지금이 어떤 망할 상황인지 샘도 똑바로 알아야 할 때가 왔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냐 샘? 좋아 말해 주지. 나는 그를 여기에 가둔 썩어빠진 놈이야 새미. 나는 순전히 그가 없는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완벽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존재를 잡아채서 이 아래 진흙탕으로 끌어내린 이기적인 개새끼야! 여기 지상에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빌어먹을, 언제나 슬픔에 잠겨 있는데 나는 어떻게도 해 줄 수가 없어! 나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어 샘. 그리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후회뿐이지. 그러니, 그래. 나는 그를 보살필 거야. 왜냐햐면 그를 사랑하니까, 또 내가 훔쳐간 모든 것 대신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란 이게 전부니까!"

샘은 충격에 빠져 눈을 크게 떴다. "아 세상에 형, 미안해. 몰랐어. 나- 난 그냥 형이 지배광이 되어가는 줄로만 알았어. 형이 어떤 기분인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어- 미안해." 그가 말꼬리를 흐렸다.

"괜찮아" 딘이 눈을 피하면서 중얼거렸다. 진심을 말하자니 고통스러웠지만, 적어도 이젠 입 밖에 뱉어진 말이었다. 샘은 왜 딘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캐스에게 잘 해주려 하는지 왜 그가 조금은 지나치게 행동했는지 이제 이해했을 것이다.

"어쩌면 형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도-" 샘은 위로하려 했지만 딘은 기진했고 그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말을 끊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새미. 이봐, 난 지쳤다고. 그냥 자러 가야겠다, 괜찮지?"

"그래 당연하지 혹-" 딘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는 이미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잠 이루지 못하는 천사를 품에 안고 밤을 지새우러. 오늘밤도 캐스가 자기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사무치게 느끼러.

카스티엘은 벌써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선 옷을 벗고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딘을 빼꼼 내다보고 있었다. 딘은 그에게 팔을 두르고 그의 머리를 자신의 턱 쪽으로 끌어당겼다.

"네가 틀렸다." 카스티엘이 그의 살갗에다 대고 속삭였다.

"뭐?"

"네가 샘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네가 틀렸어." 카스티엘은 몸을 뒤로 빼고 그를 깊이 바라보았다. 진지하고 침착한 두 눈에는 좌절이 서려 있었다. 그것을 보니 딘은 가슴이 아팠다.

"무슨 뜻이야?" 카스티엘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너와 함께 하는 삶을 택한 걸 후회할 수 있겠나? 그건 내가 원한 전부였어. 내가 원한 오직 한 가지였다 딘. 난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아."

카스티엘의 숨김없고 정직한 눈을 들여다보며 딘은 안도의 물결이 몸 전체로 흘러넘쳐 목이 메었다. 그러나 카스티엘이 조금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감격으로 온 몸이 저릿한 동안에도, 그는 그의 천사가 여전히 어떤 괴로움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그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슬퍼하는 거야 카스티엘? 샘 말처럼 내가 너무 횡포를 부렸어? 내가 너를 너무 이래라 저래라 휘둘렀어?"

그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샘은 좋은 뜻이었겠지만 그도 틀렸다. 나는 정말 네 도움이 필요해. 나는 뭐가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옷도 그렇고... 샌드위치도 그렇고... 정말 아무것도. 내 코트조차 간수하지 못하지."

"뭐 그건 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누구나 다 한 번씩은 코트를 잃어버린다고."

카스티엘은 한숨을 짓더니 눈을 비볐다. "요점은 그게 아니다 딘."

"글쎄 난 정말 요점을 이해 못 하겠는데. 뭐가 문제야 캐스? 내가 무얼 하면 돼?"

"넌 문제가 뭔지 잘 알지 않나, 딘. 내 기분을 맞추려고 거짓말하지 마라!"

카스티엘은 낙담해서 발끈 화를 내고는 그를 밀치려고 했지만, 딘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를 더 힘주어 끌어안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낙오자다. 난 너까지 낙오자로 만들고 있어."

"뭐?" 딘은 믿을 수가 없어서 되물었다. 이제 그는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날 낙오자로 만든다니 무슨 소리야?"

카스티엘은 눈길을 외면했다. "네가 날 머무르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을 때 네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계획은 이게 아니라는 걸 안다. 너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펴야 하지. 너는 온갖 것을 빠짐없이 보살펴야 한다. 나는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난 한 번도 이렇듯 보잘것없고 무력하고 무능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인간이 되고자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이렇게 못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미처 하지 못했어. 나는 더 이상 네가 사랑에 빠졌던 존재가 아니다. 나는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너의 동료가 될 수도 없어. 하다못해 제대로 된 연인 노릇도 할 수 없지. 나는 짐에 불과해. 난- 난 이럴 뜻은 없었다."

딘은 항변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카스티엘은 손을 들어올려 그 말을 막고서 말을 이었다. "나는 너와 함께 하는 것밖에는 바라지 않았어. 결정을 내릴 때 나는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네게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생각도 못하고 내 이기적인 소망을 따랐다. 그리고 이제 너는 꼼짝 못하고 어린아이를 대하듯 날 보살피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지. 나는 네가 이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딘. 지금까지 넌 그토록 남을 위해 희생하기만 했는데... 난 네게 짐을 더하고 싶지 않았어. 미- 미안하다."

딘은 놀란 나머지 말문을 잃었다. 이제껏 줄곧 그는 그가 이기적인 놈이라고, 가질 자격이 없는 것을 차지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카스티엘도 자기 자신이 그렇다고 똑같은 빌어먹을 생각을 품고 있었다. "카스티엘 너는 짐이 아니야. 나는 널 보살펴 주고 싶다고. 넌 좀 더 느긋하게 마음먹고 네 자신을 바라보아야 해."

"나는 혼자서 목욕도 못하고 식사도 주문하지 못하잖나!" 카스티엘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이런, 캐스." 딘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넌 그냥 혼자서도 잘 씻을 수 있다고. 사실... 우리가 아직 같이 샤워를 했던 건 순전히 내가 너와 샤워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었어. 내가 그런 얘기를 했어야 했나 보다, 그렇지?" 그는 잠깐 수줍은 기색을 띠었다가 덧붙였다. "또 샌드위치 주문하는 것 말이야? 나는 그냥 네가 그 여자랑 얘기하는 게 불편하리라고 생각했어. 그게 다야. 너는 힘든 하루를 보냈잖아. 네가 피곤할 것을 아니까 돕고 싶었다고. 넌 혼자서도 잘 사먹을 수 있어."

카스티엘은 한동안 곰곰 생각에 잠겼고 딘은 말을 이었다. "물론, 아직 넌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많지만 괜찮아. 나는 널 보살피는 일이 좋아. 네가 달리 생각했다면 미안해. 나랑 샘이 너를 두고 하루 종일 싸웠으니 우리가 널 원한다고 별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는 정말 널 원해. 그냥 네 있는 그대로를. 그리고 빨리 배우지 못해서 네가 편찮은 기분이라면, 넌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해. 그러니까, 너는 몇천년 동안 천사로 살았지 않냐. 네가 인간이 된 지는 이주일밖에 안 되었어. 이주일이라고, 카스티엘! 너처럼 전에 강력했던 존재가 도움을 청하기란 어렵겠지. 알아. 하지만 한동안은 어쩔 수 없어. 그냥 그렇다고. 그리고 난 가능한 한 네가 편하게 마음먹었으면 좋겠어."

카스티엘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네게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한다."

"난 네가 나와 함께 있어 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네가 여기 있어 달라고 청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건 그뿐이었어, 캐스." 딘은 그의 뺨을 만졌다. "그게 내가 바란 전부고 이루어졌어. 나 역시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아."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네 욕구는... 어떡하고?" 캐스가 망설이면서 물었다. 아무래도 다시 '제대로 된 연인'이라는 주제로 되돌아온 모양이었다. 딘은 그 이야기는 그만 내일로 미루고 싶었다. 기진맥진했다. 지금 당장 기초 성교육을 할 기력이 남았는지 정말로 알 수 없었다.

"봐, 캐스. '제대로 된 연인'이 뭔지는 나도 몰라. 정말이지 몰라. 내가 아는 건 섹스란 무척 큰일이라는 사실 뿐이야." 카스티엘이 코웃음을 치고 다 안다는 얼굴로 쳐다보자 딘은 얼굴을 붉혔다. "좋아, 인정해. 나는 항상 그게 별 게 아니라는 것 마냥 굴었지. 하지만 내가 널 사랑하듯 누구를 사랑하면 그렇게 돼. 게다가 네겐 첫 경험이라면 결단코 그렇게 돼. 난 그냥 너를 다그치고 싶지 않아. 너한텐 지금 당장 맞닥뜨려야 하는 중요한 일이 훨씬 더 많잖냐. 아니 오해는 하지 마... 난 널 원해. 정말 정말로 원해. 하지만 준비가 되었다고 네가 스스로 확신할 때까지는 아니야."

"내가 준비가 되었는지 어떻게 알지?" 카스티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글쎄, 우리가 차근차근 함께 알아나가야 할 문제 같다. 사실, 앞으로는 뭐든 함께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딘이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글쎄, 네가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지 우리 둘이 함께 결정하기 시작한다면, 아마 너도 좀 기분이 나아질 거야. 그 샤워 문제처럼? 그건 나 혼자서 너더러 이래라 저래라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너는 어떤 일에서건 네 의견을 이야기해야 해. 내가 그냥 말하고 네가 따르는 식이 아니라. 그러면 너는 네 힘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야. 뭐 그래, 천둥벼락 같은 그런 힘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네 삶을 다스리게 될 테고 직접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내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딘이 흥 코웃음을 쳤다. "농담 하냐? 당연하지! 젠장 넌 미처 깨닫기도 전에 자립하게 될 거라고.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겠지."

카스티엘은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난 언제나 네가 필요해, 딘. 너를 사랑한다. 난 너와 함께 있기 위해 여기에 왔어."

그리고는 인간으로 변하고서 처음으로, 카스티엘은 함께 연습하지 않은 일을,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유의지에서 우러난 자연스러운 일을 했다. 그는 몸을 기울이고서 천천히, 살며시 딘에게 입을 맞추었다. 달콤하게, 닿을락 말락 살짝 스쳤을 뿐인데도, 그건 딘이 태어나서 해 본 키스 중에 가장 황홀했다. 그의 천사가 마침내 배시시 웃으며 입술을 떼자 딘은 믿기지 않은 나머지 입을 딱 벌리고 그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거... 그거 네 첫 키스야?" 딘이 숨찬 목소리로 말했다. 카스티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딘이 씩 웃었다. "정말이야? 하도 격렬해서 말이야, 캐스. 내 생각엔 어, 내 생각엔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카스티엘이 하하 웃었다. 딘은 처음으로 카스티엘이 웃는 소리를 들었다. 인간으로 변화하기 이전 이후를 모두 통틀어 처음이었다. 웃음소리는 진정과 위안이 되어 그의 혈관을 타고 퍼져 나갔다. 길고 비참했던 온종일 그가 시달렸던 긴장과 고통이 사그라졌다. 카스티엘은 다시 몸을 기울이고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번엔 더 길었고, 더 깊었다. 마침내 그가 두 번째로 입술을 떼자 딘은 바보처럼 헤벌쭉 웃었다.

"사랑해." 온 얼굴에 함빡 번진 놀란 미소를 지울 수 없었던 탓에 그는 가까스로 이렇게만 말했다. 그러고서 그는 그의 천사를 다시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감싸 안고, 이불을 두 사람 위에 덮었다. 카스티엘은 그의 몸 쪽으로 더 바싹 파고들고서 그의 등을 문지르는 딘의 손에 몸을 맡겼다.

"딘?" 그가 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응?" 딘이 물었다.

"나도 너와 샤워하는 것이 좋다." 몇 주 동안 지냈던 어느 순간보다도 따스하고 행복하게, 그 둘은 처음으로 밤새 단잠을 잤다.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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