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7일 토요일

[샘/카스티엘] 구원 (5/7)



 제목: Redemption
 작가: blackdoggy1
 구분: 번역
 장르: Slash
 페어: Sam/Castiel
 등급: R


샘이 카스티엘을 자신의 인생에서 밀어내고서 몇 달이 흘렀다. 그때부터 그는 천사를 아주 가끔씩만 보았고 언제나 딘과 함께 있을 때만 만났다. 그들 둘에게 천사가 나타나더라도 그는 딱히 샘이 꼭 집어 질문하지 않는 한은 늘 딘에게 바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윈체스터 형제의 막내와 눈을 마주치거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일을 피했다.

하지만 대부분 카스티엘은 샘을 아예 피해서 딘이 혼자 있을 때 나타났다. 천사가 그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샘의 바람을 존중했으니 이 모든 상황이 좀 견디기 쉬워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샘에게 카스티엘은 어두운 바다 위에서 환히 빛나는 광명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빛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소망은 스러졌다. 그리하여 그는 형에게서조차 더욱 멀찌감치 떨어져 나와서 해답과 위안을 찾으러 그릇된 장소로 향했다. 다시 말해 루비에게로. 그는 딘의 표현에 따르면 완전히 '고삐 풀린 말'이 되었다. 너무도 내달린 나머지 이제 다시 돌아갈 길이 없음을 그는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덕분에 형과 사이가 벌어졌다. 어쩌면 딘은 샘의 운명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샘이 딘이 아주 떠나가도록 자꾸 밀어낸다면 샘은 형을 휘말리게 하는 일 없이 혼자 추락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의 깊숙한 내면 어딘가에는 어쩌면 그가 추락, 실패, 뭐라고 부르든 그에게 닥칠 운명인 거대한 파국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린아이 같은 희망이 조그맣게 남아 있었다. 그는 어쩌면, 혹시 어쩌면 언젠가 이 모든 일을 해결하고 그와 딘은 살아남고 여전히 형제 사이고 계속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버릴 수 없었다. 샘은 그 반짝이는 희망이 싫었다. 희망 때문에 그는 어리석게도 휘둘렸다. 희망 때문에 그는 포기해 버릴 수가 없었다. 희망 때문에 그는 쉬지 못했다. 아무리 그 희망을 코웃음 쳐 넘기려고 해도, 수없이 신성 모독을 하고 죄악을 범해도, 그것은 스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윈체스터였고 윈체스터 가족은, 그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딘은 선술집에서 한 잔 하러 거리로 나갔다. 샘은 함께 가지 않았다. 형제들은 요즘 함께 술을 마시는 일이 별로 없었다. 염병할, 그들은 요즘 함께 하는 일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샘은 존이 살아가며 매 순간 딘의 뼛속 깊이 새겨 놓은 '큰형'의 의무와, 딘이 그 의무를 벗어던지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 말고는 형이 아직 자신 곁에 있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형이 안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형이 벗어나는 법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샘은 정말로 이렇게 바랐다. 그럴 수 있었다면 형은 좀 더 안전했을 것이다. 샘은 또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이 그냥 떠나버려도 되는 거라고.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그도 스스로 떨치고 가버릴 수는 없었다. 그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딘이 부디 포기하고 달아나길 바라면서 그 날이 올 때까지 줄곧 밀어내고 밀어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딘이 화풀이를 하러 외출한 사이, 샘은 모텔 방에 홀로 틀어박혔다. 혼자 있을 때면 이 모든 게 조금 견디기 쉬웠다. 적어도 그러면 형의 눈 속에 어른거리는 공포와 실망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홀로 있는 몇 분 동안만은 그가 아직 샘 윈체스터인 것 같았다. 딘이 생각하는 고집불통에 위태위태한 동생이 아니라, 악마가 생각하는 암흑의 구세주가 아니라, 천사가 생각하는 위협이 아니라. 그냥 샘.

문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통에 그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순간은 깨어지고 말았다. 샘은 한숨을 쉬고는 침대에서 억지로 빠져나왔다. 딘이 평소보다 더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혼자 힘으로 문을 열지도 못하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아마 루비가 방문 판매를 하러 다시 찾아온 건지도 몰랐다. 그는 이미 몇 달 전에 그녀가 그를 속이고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 덕에 샘을 두고 그녀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딘을 따돌릴 수만 있다면.

“뭐야?” 샘이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면서 날카롭게 외쳤다. 사냥꾼으로서든, 혹은 윈체스터 가문의 일원으로서든 혼자 있는 일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샘의 힘은 이제 거의 무적이 되었고 하물며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지금 같아서는 죽음이 오히려 행복할 테니 말이다.

“안녕 샘.” 카스티엘이 차분하게 말했다. 샘은 천사가 나타난 것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입을 딱 벌린 채 바라보기만 했다. 흰 셔츠와 트렌치코트는 피에 흠뻑 젖었으며 카스티엘의 얼굴은 핏기 없이 초췌했다.

“캐스!” 전사를 방 안으로 끌어당기고는 상처를 찾으려 몸을 살피면서 샘이 부르짖었다. “다쳤어요? 무슨 일이에요?!”

카스티엘은 그의 손을 떨어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내 피가 아니다.”

“아.” 샘이 안심해서 말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리 온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천사는 전혀 개선장군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작고 기진맥진하고 가냘파 보였다.

이를 보는 샘의 마음은 미어졌다. 하지만 그는 자기 처지를 기억해야 했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했다. 거리 두기, 거리 두기, 거리 두기.

“형은 여기 없어요.” 그는 눈을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데려올게요.”

카스티엘은 한숨을 쉬고는 침대에 풀썩 주저앉으면서 목을 빼고 샘을 올려다보았다. “딘을 만나러 온 게 아니야. 널 만나러 왔다.”

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하면 잘못을 범하기 전에도 카스티엘 앞에 서 있을 때면 부끄러웠다. 요사이 많은 짓을 저지른 탓에 예의 더럽고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이 지금 천사 앞에 서자 비할 데 없이 크게 밀려왔다.

“이미 말했잖아요-”

“네가 뭐라고 말했든 상관없다!” 카스티엘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겠는데, 네가 루비와 무슨 짓을 했든 그것조차도 상관하지 않아!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은 변치 않았다.”

샘은 카스티엘이 진정으로 분노한 모습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는 틀림없이 전쟁터에서도 시선이 집중되는 존재일 것이다. 그가 빌린 몸은 작고 여렸지만 샘은 방을 가득 채우는 천사의 존재감 때문에 그만 질식할 것 같았다. 낙담과 슬픔과 절망이 방을 자욱하게 뒤덮은 나머지 윈체스터네 동생은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샘 윈체스터는 겸허한 기분이 되었다. 그는 카스티엘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천사의 양손을 잡았다. 그는 카스티엘을 만지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그동안 잊고 있었다. 손이 맞닿자 온기가 그의 영혼 구석 어둡고 차가운 곳을 적셨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샘은 믿기지 않은 나머지 소곤거렸다. "내가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도."

카스티엘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한 손을 빼내어 사냥꾼의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무 것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샘. 오늘 밤, 형제 두 명이 내 품안에서 피 흘리며 숨을 거두었다. 우리가 졌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순간에도 마지막 봉인은 깨지고 있어. 종말이 다가온다."

눈물 한 방울이 천사의 뺨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본 샘은 오싹 떨었다. 그는 카스티엘이 인류 전체, 자신이 지옥 가장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 때문만이 아니라 특히 윈체스터 형제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샘은 이런 일이 결코 없도록 하겠다고 맹세했지만 어기고 말았다, 요 몇 달 동안 다른 다짐들도 수없이 짓밟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카스티엘," 샘은 속삭이면서 그의 천사의 손을 더 꽉 쥐었다.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 말해 줘요. 무얼 해야 할지 말해 줘요. 뭐든 할 테니까!"

생각에 사로잡힌 듯한, 체념한 듯한 표정이 천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싸워야 할 전투가 하나 남았지. 너는 그곳에서 홀로 싸워야 할 거야."

바로 이거였다. 샘은 이제 숙명에 맞서게 되었다. 그것이 곧 그의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괜찮았다. 그는 그저 그가 옳은 편에서 싸우다 죽기를 바랐다. 그는 루비가 그에게 먹였던 더러운 피와 릴리스를 향해 들불처럼 번진 그의 분노와 증오를 통해 악마들이 급기야 그를 조종하지 못하리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끝내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놀아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모든 길은 한 지점으로 뻗어 있었다. 그는 이 마지막 전투에서 싸우며 할 수 있는 한 오래 그의 영혼에 남은 것을 지킬 작정이었다,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도 아니라 딘과 카스티엘을 위해서.

샘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준비됐습니다. 가요."

카스티엘은 어두운 미소를 띠고는 손으로 샘의 뺨을 쓸었다. "오늘 밤은 아니야, 샘. 내일 있을 일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죠?"

"아마도 종말이겠지만," 카스티엘이 서글피 털어놓았다.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지. 네 손에 달렸다. 내일 너는 상상조차 못할 일을 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을 거야. 네 털끝 하나하나까지 하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를 테고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반드시 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해! 그러지 못한다면, 루시퍼가 부활할 테고 우리 모두는 지옥에 가겠지. 이해되나?"

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이 날 찾아왔군요-  경고해 주려고."

그러자 카스티엘은 웃었다. 그렇지만 즐거운 웃음소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미친 사람이 터뜨리는 절망과 불안에 찬 웃음 같았다. "아니야. 내가 온 건-  내가 온 건" 천사는 말을 흐렸다. 그는 다른 데를 보았고, 샘은 잠깐 그를 가까이 살펴보다가 그의 눈 속에 무력감이 어린 것을 눈치 챘다. 마침내 카스티엘이 다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도 나와 자고 싶은가 샘?"

"네." 샘이 조용히 긍정했다.

카스티엘은 미소 지으며 그에게로 몸을 기대었다. 천사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맞아들이며 살짝 스치자 샘은 숨이 막혀 왔다. 샘이 이제껏 억누르려 애썼던 모든 감정이 맹렬하게 그를 덮쳤다-  열정, 고통, 죄의식, 사랑, 공포-  그 모두가. 그는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고는 카스티엘을 침대 위로 밀어붙이며 그 위로 기어올랐다. 카스티엘이 인간이 입은 셔츠 단추를 더듬더듬 푸는 동안 그는 연인에게 격정적으로 입을 맞추면서 그릇이 입은 옷을 찢기 시작했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흐릿했다. 살과 뼈와 피, 사랑과 욕망, 열기와 절망이 모두 엉켜 감각과 움직임의 소나기가 되어 쏟아졌다. 그것은 파괴이자 치유였다. 샘이 이렇게나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이제까지 없었고 카스티엘이 이렇게나 죽음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일찍이 없었다.

그 모든 것 한복판에서, 샘은 단 한번 멈추고서 숨가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사랑해요 카스티엘."

"나도 널 사랑한다." 그의 천사가 답했다.

그날 밤, 아마도 지상 모든 존재의 마지막 밤에, 샘 윈체스터는 마침내 공포에서 놓여나 깨달았다. 그래, 그는 악마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터였다. 그는 세상을 구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카스티엘, 가장 충실한 주의 전사는, 그의 팔을 베고 누워 쉬며 그에게 전투를 맡기고 종말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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