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2일 토요일

[gen]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제목: Never Alone
 작가: Aimless Traveler
 구분: 번역
 장르: Gen
 인물: Castiel, Uriel, Lucifer, Anna
 등급: PG
 경고: 4시즌 16화 스포일러





예전에 그는 이것보다 훨씬 심한 타격도 견딘 적이 있었다.

주먹은 그의 턱, 눈, 입을 내리치는 쇠붙이보다는 참을 만 했다. 손마디 관절이 그의 입술을 찢었고 핏줄기가 턱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절로 뒤로 휘청거릴 만큼 거센 주먹이 날아왔다. 몸을 추스르고 바로 서서 주먹을 움켜쥐고 앞으로 내지르던 카스티엘은 마주선 상대방을 후려갈기는 자기 주먹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싸우는 것이 동기를 멸해야 한다는 뜻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와 함께 하자. 형제여, 부탁이니 나와 싸우려 하지 말게. 날 도와 줘. 자네는... 그저 두려움을 버리기만 하면 되네." 그의 형제는 위협하고, 설득하고, 호소하는 말을 했지만- 간청하지는 않았다. 그래, 우리엘은 간청하기엔 너무 교만했다.

교만.

그것은 으뜸가는 죄였다. 하느님께서 미워하시는, 다른 무엇보다도 미워하시는 죄악이었다. 카스티엘은 아직도 교만 때문에 전락해 버렸던 다른 형제를 기억했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는 루시퍼를 기억했다. 그의 자신만만하고 강하던 형제를. 항상 누구보다도 성심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였던... 그러나 카스티엘이 가장 생생하게, 인상 깊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위엄과 영예가 지나친 나머지 오만함으로 변한 때, 주님의 전사 중 삼분의 일이 반역하고 그들의 지도자와 더불어 추락했던 그 전투였다. 한때는 세라핌 중에서도 가장 드높은 자리에 있던 이는 끝내 암흑의 왕이 되고 말았다.



"나와 함께 하자, 형제여. 그것이야말로 정의와 참된 의로움을 수호하는 유일한 길이야."

은빛 검 끝을 하급 천사의 목에 겨누는 루시퍼의 눈, 한때는 항상 그리도 위엄 있고 넋을 빼앗을 만큼 매혹적이던 그 눈은 지금 차갑고 공허했다. 그는 적이 꼼짝 못하도록 무릎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짓누르면서 칼날을 아래위로 위협하려는 양 그었다. "대답은 뭐지?"

카스티엘은 칼날의 날카로운 끝이 거의 목 살갗을 가를락 말락 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고 천사장을 노려보았다. 그의 형제자매는 순명하기를 거부한 동기들과 싸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대전쟁이 맹위를 떨치는 이 때, 그는 여기, 이슬에 젖은 전쟁터 한가운데 납작하게 누운 채 루시퍼에게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의로움이 아니다." 그는 최면을 거는 힘이 실린 대천사의 말에 힘겹게 맞서 싸우며 항변했다. "이건 우리 아버지에게 항명하는 짓이야-"

루시퍼는 한숨을 쉬고 애처롭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그러는 동작엔 비웃음이 잔뜩 서려 있었다. "형제여, 넌 어리고 어리석구나." 그는 한마디 내뱉으며 카스티엘의 목을 틀어쥐고 일어섰고,  포로를 바닥에서 끌어올려 천사의 사파이어 빛깔 눈동자에 칼끝을 들이대었다. "눈을 떠서 날 받아들여라!"



우리엘의 음산한 시선이 그를 파고들었다. 그의 영혼에는 카스티엘이 그간 타락한 형제들의 눈에서 보아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힘을 얻고자 하는 욕망과, 지옥의 모든 암흑과 부정함이 감돌았다. 카스티엘은 가슴이 미어졌다. 형제여, 자신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어떻게 아버지의 은총에서 그토록 멀리 벗어나 타락할 수 있지? 주먹이 뺨에 호되게 박혔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아픔 대신, 죄책감이 넘실거렸다. 경고 징후를 포착했어야 했다. 딘을 시켜 앨러스테어를 고문하라는 명령은 천국에서 내려온 것이 아님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가 우리엘이 한 거짓말을 꿰뚫어볼 수만 있었다면, 그의 관리 대상은 이 순간 병상에 누운 채 목구멍에 산소관을 꽂아 겨우 호흡을 유지하는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사태는 그의 염려처럼 단지 주둔군 전군을 동원하고도 종말을 막지 못하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들 중 거의 모두가 반역의 길을 택했고 투항하여 함께 불복종하지 않는 자는 살해당했으니. 그는 실패하는 길목에 있었다. 이미 실패로 끝나 있었다. 내 동정심, 그 감정이 내 판단력을 정말로 흐려 놓았군. 이제, 우리엘이 그의 숨통을 끊을 작정으로 그에게 다가오는데도, 카스티엘은 자기 안에서 형제를 죽일 의지를 끌어낼 수 없었다. 주먹에 힘이 실리지 않았고, 겨냥하는 품도 어설펐다. 맞서 싸우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본 우리엘은 그가 주저하고 있음을 알았다.

상관이 그에게 두었던 혐의가 옳았다. 그는 정말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는 무력한 느낌이었다.



"당신은 이미 세라핌 중 으뜸가는 지위에 있지 않은가. 왜 그 이상을 욕심내지?"

"너는 인간에게 허리를 숙일 텐가?" 루시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한때 아름다웠던 이목구비가 증오로 일그러졌다. "말해 봐, 카스티엘. 왜 불꽃의 아들이 흙의 아들에게 강제로 허리를 숙여야 하지? 그들은 진흙으로 이루어진 존재야, 형제여. 진흙! 우리는 그것들에게 침을 뱉어야 마땅해."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자녀야." 카스티엘이 깔깔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시퍼가 칼날을 비틀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루시퍼는 자기 검으로 카스티엘을 찔렀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그는 이 강대한 천사가 그런 식으로 그를 고문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충실한 동기들이 대천사와 대결하자마자 단숨에 목숨을 잃었다.

마치 그의 생각을 느낀 양 루시퍼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대체 네게 무얼 해 주었지, 카스티엘? 너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잖아!" 대천사는 형제를 땅바닥에 메어붙이고 목을 짓밟아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난 나의 보좌를 하느님의 별들 위에 두고 신들의 회의장이 있는 저 북극산에 자리잡으리라. 나와 함께 하자, 형제여." 그는 칼을 몇 치 더 비틀면서 몸을 굽혔다. "그러지 않겠다면, 최후를 맞이하여라."

칼날이 그를 할퀴자 카스티엘은 몸을 뻣뻣이 굳혔다. "당신은 다른 이들은 유혹하지 않았지." 그는 식식 숨을 몰아쉬었다. "왜 나지?"

"사실 네가 천사 군단에서 강한 축에 들지는 않아." 루시퍼가 인정했다. "하지만 넌 아버지를 향한 충성심이 확고하고 나는 그런 충실한 병사가 곁에 필요하다. 내가 지금 네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앞으로도 결코 그럴 수 없겠지."

"나를 개종시키려는 건가?"

루시퍼가 선웃음을 지었다. "나와 함께 하자, 형제여. 내가 이 신이라는 멍청이를 추방하는 걸 도와주고 왕권을 확립하는 것을 거들어 다오. 우리는 인간과 세상 만물을 지배할 거야."

"너는 내 형제가 아니야." 카스티엘이 의로운 분노에 휩싸여 으르렁거렸다. "너는 하느님이 아니고, 결코 그분이 되지 못할 거다."

"그렇다면 죽어라." 마왕은 단호하게 말하면서 카스티엘의 형체에서 검을 뽑아 마지막 일격을 내리꽂으려 정수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동생아, 넌 혼자 죽어 가는구나."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지금, 얼굴엔 흉한 분노의 빛이 퍼진 채로 카스티엘의 어깨를 우그려잡고 한 방 더 먹이려 주먹 쥔 팔을 뒤로 젖힌 이 남자는 사실 천사였다. 이 천사는 그의 형제였다. 이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란히 싸우고 함께 아버지를 섬겼던 이 형제가 동기간의 신뢰를 저버렸다. 우리엘은 배후에 악마가 있는 것처럼 위장해서 형제자매를 밤의 어둠을 틈타 죽인데다가, 무엇 때문이라고? 개종시키기 위해서라고? 카스티엘은 욕지기가 났다.

예전에 그는 이것보다 훨씬 심한 타격도 견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엘이 뻔뻔스럽고 차분하게 루시퍼를 부활시키려는 목적이었다고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의로운 행동을 한 양 설명하는 말을 듣자니... 한 단어가 떠올랐다. 너무 두렵고,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입 밖에 낼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마음 속 목소리는 그 단어를 속삭였다.

배반.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형제가 저지른 배반이었다, 다른 어느 무엇보다도 쓰라린 것이었다. 앨러스테어가 영원토록 등에 손톱을 박아 넣고 그릇의 육체에 깃든 그를 매달아 놓을지언정, 그는 지옥의 군세에 맞서서는 지칠 줄 모르고 싸울 수 있고 마음속에 의혹을 간직한 탓에 받는 고통도 견딜 수 있었지만, 천국에 의한 고통은... 무릎 꿇은 채, 일어설 힘이 없어 흐늘대며, 우리엘이 짐승처럼 광포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윙윙 울리는 건-

"자넨 못 이겨, 우리엘." 카스티엘은 피가 흥건히 고인 입으로 가까스로 말했다. 머리가 세상 무엇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고개는 뒤로 축 늘어뜨리고 눈으로는 다른 천사의 메스꺼운 시선을 받아내면서도 그는 아랑곳 않고 진실을 말했다. "난 여전히 하느님을 섬기네."

우리엘은 자기 형제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이토록 고집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분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자넨 그 양반을 만나본 적도 없잖아!"

카스티엘은 흐릿한 눈을 깜빡였다. 그것밖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루시퍼의 목소리, 지옥의 아들이 말하던 목소리가 그의 마음속에 쟁쟁했다. 조롱과 경멸이 서린 그 목소리가 영겁 전에서부터 되돌아와 울렸다. "그래서 소중한 아버지가 대체 네게 무얼 해 주었지, 카스티엘? 넌 그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잖아!"

하지만 루시퍼는 틀렸다. 우리엘도 틀렸다, 안나도 틀렸다. 그는 그들 중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노예들이기에. 그들은 순명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아직 그의 마음속은 의문으로 자욱했지만, 그는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는 절대로 그들과는 같아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겐 여전히 믿음이 있으니까. 그가 품은 의구심에도 불구하도, 카스티엘은 자신이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신뢰할 것임을 알았다. 비록 그가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비록 어떤 계획인지 그에게는 알려 주지 않더라도.

그 믿음 때문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신의 뜻- 같은 건- 없고!" 몸이 이상스레 무겁게 느껴졌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던 탓에 카스티엘의 머리는 형제가 주먹을 내리꽂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까부라졌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서 있는 건 오직 그의 어깨를 그러쥔 우리엘의 손가락 덕택이었다. 그의 몸은 힘없이 축 처졌지만 형제가 문득 그를 세게 잡아채는 통에 둘의 눈은 다시 마주쳤다. "진노도. 없고!"

카스티엘의 머리는 주먹에 실린 힘에 치여 한 쪽으로 꺾였다. 눈앞이 가물거려 더 이상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지금 그는 알았다, 그는 다른 천사가 루시퍼의 검으로 그를 죽일 작정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엘은 그를 흠씬 때려눕혀 굴복시키려 하고 있었다. 카스티엘은 그를 도전적으로 노려보았다. 굳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가 그의 지친 눈빛 속에 감돌았다.

형제의 눈은 이글거렸다. 자넨 바보야, 그 성난 시선이 책망했다. 자넨 불쌍하고 어린 바보야. 루시퍼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이윽고 우리엘은 루시퍼가 혀끝에 올렸던 가장 강한 신성 모독을 되풀이했다. "신 같은 건. 없어!"

우리엘은 주먹을 아래로 휘둘렀지만, 끝까지 뻗지는 못한 채 공중에서 멈추었다. 루시퍼의 검날이 그의 목젖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천사의 목소리와 그의 불경한 신성모독 발언은 영원히 그쳤다. 그리고 타락천사에게서 은총이 빠져나가고, 천국의 전사 중 한 명이 무로 화하자, 카스티엘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화가 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슬플 뿐이었다. 잘 가게, 형제여.



카스티엘의 힘은 스러져 갔다. 전신이 떨렸다.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루시퍼의 악의에 찬 얼굴은 아니길 바랐기에 그는 고개를 돌려 대천사를 외면했다. 그는 숨을 멈추고 아버지께 자신의 실패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는 은빛 칼날이 그의 몸에 떨어지길 기다렸다- 

"루시퍼!"

악한 천사가 사라졌다. 그의 가슴을 무겁게 누르던 그 형체는 이제 없었다. 카스티엘은 눈을 떠 다른 대천사에게 돌진하는 그의 형제 미카엘, 천사 군단의 왕을 보았다. 그의 거대한 날개는 활짝 펼쳐져 힘차게 펄럭거렸다. 지배권을 겨루기 위해, 천국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한 편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르는 자였고, 다른 한 편은 자아의 노예이자 주인인 자였다.

그같은 악이 하마터면 영혼을 더럽힐 뻔 했다는 것 때문에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마침내 승리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들었을 때, 타락천사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천국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카스티엘은 한 가지를 알았다- 아버지께서 그의 영혼을 구원하셨다.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이 부드럽게 그의 어깨에 닿았다. 하지만 그는 손의 주인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라."

상처와 분개가 뒤섞인 표정을 얼굴에 띠우며 안나는 손을 거두었다. "네 감사하는 말은 고작 그거야? 그보단 길게 말할 거라 기대했는데, 캐스."

"당신은 내가 당신과 함께 하길 기대하겠지, 안나." 카스티엘은 몸을 돌려 타는 듯한 은청빛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그런 짓은 하지 않겠다. 가라."

"넌 날 불러서, 네게 무얼 할지 말해 달라고 청했어." 그녀는 쉿 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날 내치는구나, 내가 널 속수무책으로 죽을 지경에서 건져낸 직후에. 너는 염치도 없나, 형제여?"

어떤 낯선 것이 그의 가슴 속에서 솟아올랐다. 한 어두운 감정이 카스티엘에게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안겨 주었다. 그는 주먹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며 목소리를 한층 낮추었다. "내 이름은 카스티엘이며 너는 내 자매가 아니다." 그는 위협조로 으르렁거렸다. "나는 주의 천사다. 난 다른 누구도 섬기지 않아. 아버지의 반대편에 서서 싸우는 누구와도 함께 하지 않겠다. 가라."

안나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담고 그를 노려보다가 도도하게 턱을 치켜 올리고서 사라졌다.

몸에 생겼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자 카스티엘은 심호흡을 하면서 힘겹게 주저앉았다. 그는 지쳐서 눈을 감고 벽에 기대었다. 그는 루시퍼의 유혹에서, 안나의 부탁에서, 우리엘의 위협에서 헤어났다. 그는 결코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지옥이 흥한다 해도, 루시퍼가 지상을 걷는다 해도, 모든 희망이 스러진다 해도- 나는 여전히 하느님을 섬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분을 섬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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