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일 수요일

[카스티엘+루시퍼] 대화


 제목: Conversational 
 작가: starkraves 
 구분: 번역
 장르: Gen
 등장: Castiel, Lucifer
 등급: PG-13
 경고: 5시즌 10화 이후를 배경으로 한 missing scenes 





대화



“글쎄, 네 앞에서 미움을 살 짓을 하면 그녀도 별 이로울 것이 없겠지?”


-『참나무 전쟁』





처음으로 루시퍼가 그를 찾았을 때, 카스티엘은 딘의 부적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그는 현실 차원을 거꾸로 휘고서 그 느낌을 뒤쫓아 맨해튼 중심가 한복판에 내려섰지만 지미의 살갗에 한순간 닿았던 그 열은 퍼지자마자 순식간에 사그러들고 말았다. 오전 늦은 시간이었다. 거리는 귀가 먹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물리적으로 그랬다. 수천 명이 떠드는 음성이 뒤섞여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도시의 온갖 소리, 라디오, 자동차, 벨, 휴대전화 소리로 된 투박한 교향곡 위로 왁자하게 퍼졌다. 사람들이 그에게 어깨를 부딪쳐 오면서 무리지어 밀고 지나가는 동안 카스티엘은 혼란과 희미한 실망감에 휩싸여서 보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인간의 물결이 그를 스치며 흘러가는 가운데 그는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차갑게 식은 금속 부적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그는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서, 그릇의 가늘지만 힘센 손가락으로 그것을 쥐고 덧없이 사라진 그 열이 되돌아오기를 기도했다.

그는 눈을 들었다.

희미하게 웃음을 띤 루시퍼가 건너편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큰길 위를 쏜살같이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들 너머로 지그시 시선을 보내오는 그는 시간의 영역에서 반쯤 벗어나 주변 물질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고- 마치 그와 카스티엘이 공유하는 비밀이라도 있다는 양- 카스티엘은 휙 사라졌다. 그는 우주를 허리에 휘감고 황금빛 햇볕이 그릇의 피부에 내리쬐는 아프리카, 이집트, 사하라의 누렇게 마른 초원을 건너 지구의 밝은 지역으로 솟구쳐 날아갔다. 유대 고원의 태양 아래, 몸에 침투하고 표피에 흐르지만- 열을 차단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메마른 열기 속에서 그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지미의 손가락은 아직도 부적을 꽉 움켜쥔 채였다. 부적의 날카로운 돌기에 찔린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




두 번째로 루시퍼가 그를 찾았을 때, 그는 티베트 산맥 중심부에 숨겨져 잊혀진 고대 사원 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소리굽쇠를 타고 흐르는 음처럼 낮은 떨림이 지미의 몸을 타고 흐르는 가운데, 바닥에 펼쳐진 그릇의 흰 두 손은 피로 그린 복잡한 인 중앙을 누르고 있었다. 그것은 고대의 의식이었다. 억겁보다도 오래된 것이었다. 카스티엘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던 탓에, (신열과 새어나오는 힘으로 뜨거운) 한 손이 지미의 어깨를 건드리기까지는 루시퍼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카스티엘은 길게 현실계를 뛰어넘고, 우주를 찢어 도망칠 틈을 열었지만 루시퍼는 손가락으로 시공간 연속체를 뒤틀어 카스티엘이 나갈 길을 봉했다. 공기가 떨렸다. 만물이 다시 정지했다. 지미 노박의 호흡은 완전히 멈추었다.

“카스티엘.” 그는 그 누구와도 다른 어떤 부드러움을 담아 그의 이름을 말했다.

(“어이, 캐스!” “캐스, 어딨냐?” “카스티엘.”)

그건, 그는 절대 그렇다고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겠지만, 그의 진정한 이름에 매우 근접했다.

침착하게 그는 말했다. “루시퍼.”

마치 저 천사가 속에서부터 파먹어 나오는, 닉의 부드러운 조직을 뼈에서부터 극초단파로 절이고, 삭이고, 부패시키는 암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깃든 그릇은 계속 썩어가는 중이었다. 닉의 영혼은 으스러져 루시퍼의 뒤틀린 신성(神性)이 지나치게 달고 찐득한 탓에 썩어버린 핏속에 묻혀 있었다. (무로 화하기 전까지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비명을 질렀는가?) 메스꺼워진 카스티엘은 몸을 굳혔다. 반사적으로 그는 잠든 지미 노박의 영혼 주위를 자신의 의식으로 더 단단히 감싸고, 그를 자신의 중심에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카스티엘의 날개 그림자 속에 있는 그는 인간성과 빛이 맺힌 눈부신 아몬드 열매였고 닉 마샬이 당한 일에 혐오감을 품는 것이 천사의 본성이었다.

쿡쿡 웃는 것을 보니 루시퍼는 그 움직임을 느꼈음이 틀림없었다. “넌 참으로 이상하구나.” 그는 말했다. “너는 사랑을 둘로 갈라 신과 인간에게 바치는군. 그건 불경죄야.”

“불경이 아니다.” 카스티엘은 짧게 말했다.

루시퍼는 이 말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러더니 그는 한 손을 들어 지미의 얼굴에, 순수하게 유형체만 향하는 동작으로, 명백하게 지미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그는 그릇의 무표정한 눈썹 호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손가락 끝으로는 왼쪽 눈 속눈썹을, 광대뼈를 소리 없이 스치고 지나간 다음 턱선에 머물렀다가 엄지손가락 하나로 그곳에 까칠하게 자란 거뭇한 수염 자국을 쓸었다- 친밀하지만 기만적인 동작이었다. 카스티엘은 그 손동작에 냉혹한 평가가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다. 생산품의 질을 감정하는 정신적인 시선. 세월을 거슬러 지미의 혈통을 읽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 유전자의 역사와, 가계의 유산이 온전히 간직되도록 하늘이 개입했던 온갖 일을 따라가는, 마치 사육하는 가축처럼, 교미하는 발정기 동물처럼, 마음대로 가져가 써도 되는 푸른 눈의 물건처럼 대하는 시선- 카스티엘은 지미의 몸을 뿌리쳐 루시퍼의 손을 떨어냈다. 어떤 감정이 끓어올랐다. (증오일 수도 있었지만.)

타락천사는 그저 미소짓기만 했고, 즐거움은 시커먼 중압이 되어 사원의 석재를 구석구석 내리누르며 스몄다.

“그는 고깃덩이야, 카스티엘.” 그의 시선이 똑바로 눈을 향했다. “저들 전부가 그렇지.”

그러나 산 공기 중에 날개 소리를 메아리치며 천사는 훌쩍 날아가 버렸고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 말고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연민도.




***




세 번째로 루시퍼가 카스티엘을 찾았을 때, 그는 이번에는 그 움직임을, 지독한 장력으로 세계의 한중간이 구부러지는 것을 느끼고서 차원을 뚫고 딘과 새뮤얼을 수폴스로 막 다시 내던진 찰나였다. 그가 현실계에 생긴 균열을 느끼고서 형제의 이마에 손바닥을 턱 얹고는 세게 밀어젖혔을 때 딘은 ‘캐스, 뿅하고 날아가서 파이 좀 사다 주라’라는 취지의 말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윈체스터 형제들은 그가 파이가 싫어서 자기들을 순간이동시켰다고 생각하리라 짐작했다.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그는 파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정전기 튀는 것 비슷한 충격을 받으며 주 두 개를 건너 바비의 집 현관에 굴러떨어졌음을 느끼고 나서 그는 그들을 붙잡고 있던 힘을 거두었다...

그러자마자 루시퍼가 방 안에 있었다.

“아슬아슬했구나.”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얼마나 빈틈없이 지키는지 그들도 알고 있어?”

상황 파악을 못한 카스티엘은 고개를 기웃했다. 그는 이미 무형(無形) 세계의 복잡한 소용돌이를 잡아찢고서 전속력으로 통과할 채비를 끝냈지만, 루시퍼 때문에... 어리둥절해진 참이었다. 변질되어 검은 연기처럼 보이는 은총은 안정되게 피어오르면서, 공격 태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엷은 비구름처럼 모여들어 마치 먼 뇌운처럼 그를 감싸고 있었다. 사실, 천사의 말로 하자면 그는 엄지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정도였다. 그는 마왕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제대로 대꾸하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듯 그는 일순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루시퍼는 키들키들 웃었다.

“그래. 나도 네가 말하지 않을 줄 알아. 네가 말하게 할 필요도 전혀 없고.” 그는 눈으로 방을 훓으며, 흩어진 무기들, 나뒹구는 노트북, 빈 피자 상자 여러 개, 여기저기 널브러진 부츠와 양말, 세계의 종말을 막기 위한 이 싸움에서 카스티엘의 유일한 한편인 인간 형제들이 만들어 놓은 난장판을 눈여겨보았다. 루시퍼는 다시 카스티엘에게로 눈길을 돌렸고 초점을 집중해 짙어진 두 눈동자는 마주 선 천사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카스티엘은 그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카스티엘?”

천사는 머뭇거렸고, 반쯤 아득한 기분으로 귀를 기울였지만 자신이 그러는 까닭은 잘 몰랐다.

“목요일의 천사가 어떻게 캔자스 출신 얼간이 한 놈의 말만 듣고 천국 군대에 반기를 들기로 결정했는지 알고 싶어.”

카스티엘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찰나가 지났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가 말하는 사이 루시퍼는 덧붙였다. “그는 도로시가 아니야.”

카스티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루시퍼는 딘이 ‘그에게 말장난을 칠’ 때 앞질러 히죽거리던 것과 비슷한 웃음을 머금고 그를 보았다. 그 엉터리없이 비합리적인 명제 때문에 혼란에 빠진 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에 눈만 크게 뜨고서 잠자코 서 있었다. 카스티엘의 괴로운 듯한 표정을 실컷 즐긴 다음 루시퍼는 상세하게 설명했다. "도로시. 오즈의 마법사 영화에 나와. 그녀가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캔자스 주에 사는데, 멍청하고 반사회적이고 겁많은 등장인물들을 어중이떠중이 모아서 그들과 더불어 마지막엔 서쪽의 나쁜 마녀를 죽이지. 그런 다음 그녀는 부츠를 맞부딪치면서 "야, 존나 내 집만큼 좋은 덴 없구나"라고 말하고서는 집으로 돌아가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

천사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루시퍼는 쿡쿡 웃었다. “왜 그가 널 좋아하는지 이제 알겠는데.”

카스티엘은 사라졌다.




***


네 번째로 루시퍼가 그를 찾았을 때, 카스티엘은 인간들이 남베트남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더운 빗줄기를 맞으며 자매의 텅 빈 그릇을 떠받쳐 안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모잠비크 사람이었고, 아마도 스물셋쯤 되었을 것이고 '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 쓰던 말은 스와힐리어였다. 빗물이 처녀의 철사처럼 뻣뻣한 머리카락을 적셨다. 그녀의 검은 눈은 그들 위로 솟은 잿빛 하늘을 말끄러미 향했으며, 카스티엘이 그녀를 끌어안고 아주 오랜 시간을 여기 쭈그리고 앉아 있었기에 벌어진 입에는 이제 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그들 주위 진흙에는 불타 재가 된 날개가 펼쳐졌던 모양대로 거멓게 그을린 무늬가 선명했다.

사락 날개 치는 소리가 났다- 새로 나타난 질량체가 공기 중에 한 줄기 바람을 일으켰고 이 험한 뒷골목을 흐르는 흙탕물은, 그와 마찬가지로, 이 상실을 이해하는 다른 이의 날개에 가려 갑자기 가무스름해졌다. 황량하고 컴컴한 우주의 냉기 속에서 눈부시게 확 타올랐다 파열하는 별처럼 억겁의 시간이 소작되어 불살라졌다.

인간들은 그들의 말초적 세계에 난 바늘만한 구멍을 보았다. 카스티엘은 그녀의 은총이 폭발하며 휘저은 수억 킬로미터의 초토를, 우주의 질서 가운데 거대하게 뚫려 울부짖는 공동을, 전에는 우주 속 노래의 한 정점(定點)이었지만 이제는 적막만 흐르는 어둠을 보았다. 이상하게 쥐어트는 무엇이 그릇의 가슴에서 불현듯 북받쳐 오르더니 목이 꽉 메었다. 그는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몰랐다.

닉 마샬의 신발이 진흙탕에 잠겼다. 지미의 옷은 이미 흠뻑 젖었다. 비로 축축해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었다. 카스티엘은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의 내면에 숨겨진 단단해 보이나 여리고 아리는 구석은... 형제가 이 일을 아는 척해 주기를 바랐다.

“그녀는 반역했어.”라고 루시퍼는 발언했다.

카스티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와 합류하려고 오는 중이었어, 맞지?”

철벅거리며 내리는 빗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루시퍼는, 그녀를 죽인 하늘을 커다랗게 확대된 동공으로 말끄러미, 말끄러미, 말끄러미 바라보는 그릇의 표정 없는 얼굴만 내려다보며 곁눈질 한 번 하지 않는 카스티엘 곁의 진흙탕에 같이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그는 그녀에게 미칠 만큼 빨리 손을 뻗지 못했다. 턱도 없이 빠르지 못했다...) 신열 때문에 노르께하게 변한 손가락이 두 사람 사이로 뻗어오더니 카스티엘의 뒷목덜미에 놓였다. 형제는 카스티엘이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던 온기와 친숙함을 풍겼다. 루시퍼가 몸을 굽혀 그녀의 이름을 (인간들이 쓰는 어색한 사투리가 아닌.) 그들의 언어로 비밀스럽게 소곤거리도록 그가 두었다는 것이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쓰라렸는지에 대한 증거였다. 모국어를 들은 지 너무도 오래 되었던 카스티엘은 더 듣기를 원한 나머지 몸서리를 쳤다. 루시퍼는 카스티엘의 이름도 불렀다. 그 음절은 달콤하고 아름답게 울리며 그들을 둘러싼 세계로, 천지만물 중으로 속살거리며 퍼져나갔다. 연민(유혹)과 위안(저주)이 적당히 섞여서 그의 은총 위를 손가락과 같이 미끄러지는 그 목소리는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다.
 
“카스티엘. 이 전쟁은 그들 모두를 말살할 거야.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반역한 천사든 반역하지 않은 천사든 더 많은 인원이 네 탓으로 죽겠지. 네가 윈체스터 형제를 숨기고. 그들을 보호하고. 피하지 못할 운명을 미루는 동안 네 형제자매는 불타는 거야." 전직 대천사는 카스티엘의 이마에 이마를 대고 속삭였다. “아니면 넌 이게 조금도 네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빗줄기는 마침내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의 흔적을 남김없이 씻어냈다.





***





다섯 번째로 루시퍼가 카스티엘을 찾았을 때, 그는 뉴욕 퀸즈 구역의 한 커피숍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샘과 딘은 그들이 바로 이 구역에서 단서를 추적하는 동안 그에게 ‘꼼짝 말고 있으라’고 부탁했다. 이 시설 안에서 ‘일없이 어슬렁거리는’ 건 금지였기에 그는 블랙커피를 하나 시켜 잔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20분을 보냈다. 그는 옆에 앉은 남자가 딸의 비싼 병원비를 치르기 위해 돈세탁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왼쪽에 앉은 여자는 남편이 아닌 애인이 어서 도착하길 고대하면서 초조하게 립스틱을 고치는 중이었다. (구석 칸막이에 앉은 남자는 그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지를 알아내라고 고용된 사설탐정이었다. 그는 네 아이의 아버지였고 불륜에는 진절머리가 나 있었다.) 바 끝에 선 여종업원은 사귀는 내내 규칙적으로 그녀를 강간하던 남자와 막 헤어졌고- 비록 강간이라는 사실을 절대 그녀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미 노박의 머리카락을 마음에 들어 했다.

이런 생김새가 마음에 들다니, 카스티엘이 생각하기엔 좀 별스러웠다. 종업원이 가득 찬 그의 머그잔을 다시 채워주러 다가왔기에 그는 식어버린 음료 절반을 한 번에 쭉 들이마셨고 (그래서 그녀가 할 일이 있도록) 갓 끓인 커피가 담긴 둥그런 유리 주전자가 어깨 너머로 내려와서 기울어지는 모양을 관찰했다. 김이 솟는 검은 물줄기가 잔으로 졸졸 흘러들어갔고 카스티엘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자그마한 은총의 숨결, 너무 극미량이라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될 숨결이었다. 그러나 정신이 맑아지면서 그녀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평안을 얻었다.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희망의 기색이 눈동자에 감돌더니- 그녀는 천사가 주는 위안을 사랑의 열병으로 착각했다- 그녀는 미소를 띠며 물러갔다.

“상냥하군.” 익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카스티엘은 움찔하지는 않았으나 평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고개를 내둘렀다. 루시퍼는 초콜릿 에클레어를 우물거리는 중이었다. 닉은 암환자처럼 보였다, 얼굴은 정맥류로 얽었고 피부에는 반점이 돋은 모습이었다. 루시퍼는- 그러나- 차갑고, 찬란하고, 수치스럽게도 아름다웠다. 지미의 손바닥으로 감싼 커피잔이 뜨거웠으나, 카스티엘은 무시하고서 옆에 와 있는 비인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게 안 다른 아무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물론, 마왕이 그들 틈에 끼어 아침을 먹는 와중에도 그들은 하던 일을 했다. 이건 어쩐지 가슴 속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 같았지만, 카스티엘은 그보다는 샘과 딘이 어느 때라도 돌아오지나 않을지 (아니면 루시퍼가 이미 그들을 찾아 수하 악마를 보내지는 않았는지) 염려했다.

루시퍼는 태평해 보였다. "넌 한때 수호천사였지." 그는 대화를 나누듯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오래 전에. 내가 맞혔어?"

"우린 모두 수호천사였다." 카스티엘은 딱 잘라 꼬집었다.

나무라는 듯한 미소. " 아니었어." 카스티엘은 부인하지 않았다. 루시퍼는 그를 보았다. "하지만 너는... 내가 짐작하기에 너는 저들 모두를 도우려고 애쓰는 부류 중 하나였지. 비명을 지르는 각다귀들이 제풀에 죽기 전에 일일이 가 닿으려고 능력 한도를 넘어 날개를 펼치는, 그들이 촛불처럼 꺼져 가는 것을 막으려 애쓰는." 그는 이초 전만 해도 그 자리에 없었던 달콤한 냄새가 나는 따뜻한 음료를 한 모금 마셨고 카스티엘은 강대하고, 제멋대로인, 가브리엘을 떠올렸다. 루시퍼의 빛나는 시선이 즐거워하며 예리하게 그를 꿰뚫었다. "그렇지 않았나?"

카스티엘은 눈길을 피했다. 손에 들린 커피가 너무 뜨거웠다. 몸을 제어하는 사람이 지미였다면 그는 머그잔을 떨어뜨리고 미친 듯이 손을 털었으리라, 샘이 지글지글 끓는 전자레인지 피자를 맨손으로 꺼낼 때 그러듯이. 루시퍼는 에클레어를 마저 다 먹고 엄지에 묻은 초콜릿을 핥았다.

"진정해, 카스티엘. 난 싸우러 온 것이 아니야."

"너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카스티엘이 말한 까닭은 루시퍼의 위험성은 절대 전투에서 치명적으로 강하다는 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점 역시 위험했지만.) 천국을 분열시키고 그의 등 뒤에서 지옥이 검은 파도처럼 떨치고 일어나게 한 것은, 세계의 상처에 독을 풀고 곪게 한 것은 그의 미소와 혀의 사탕발린 마약이었다. 루시퍼는 나직한 소리로 웃고는 카스티엘의 어깨를 딘 윈체스터를 연상케 하는 거칠지만 붙임성 좋은 태도로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뜨거운 무언가가 연기를 피우며 돌연 그의 은총을 뒤덮었다가 저절로 없어졌다. 카스티엘이 손아귀로 움켜쥔 커피잔은 바스라지기 직전이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루시퍼가 미소를 지었다. "넌 참 특이한 존재구나."

"날 스카우트하려는 건가?"

"난 스카우트는 하지 않아." 그는 다시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머금고, 목으로 넘겼다. "지원자를 받지."

"난 지원하지 않아."

카스티엘은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였다. 루시퍼가 한숨을 쉬었다. "앉아." 무시무시한 압력이 카스티엘이 도로 앉게끔 세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는 균형을 잡으려고 카운터를 짚었다. 루시퍼의 관심은 케첩 옆 도자기 접시에 든 자그마한 색색 포장에 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몇 개 찢어 잔에 백설탕을 쏟아붓고는, 저었다. 그는 잔 너머로-  약동하는 은총을 파지직거리면서 천천히 주의 깊게 호흡하는 카스티엘을 흘끗 보았다. "네게 하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단다, 동생아."

맥놀이 파동. 카스티엘은 추위를 느꼈다.

"이제 진정하고 가만 앉아 있어. 난 샘이나 딘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야. 말했지. 그건 때가 되면 일어날 일이라고. 그러니 너도 그런 식으로 앉아 있지 않아도 돼. 그러다간 지미의 솔기가 터질 테고 그건 무자비한 짓 아닐까. 뭐랄까 그가 라파엘의 손에 분자 단위로 산산조각나게 만드는 것만큼." 카스티엘은 탄력 있는 지미 노박의 외피 안에서 맹렬하게 몸을 사리며 한층 더 긴장할 뿐이었고, 그 인간은 루시퍼의 눈에는 별빛이 쬐어 사람 모양으로 태운, 빽빽한 밀도의 한 덩이 숯조차도 아니었다. "흠, 그는 너한테 꼭 맞는군 그래. 그렇지 않아? 부츠처럼."

"원하는. 게. 뭐냐."

그는 샘이 하겠다고 말하리라는 그의 추정도, 지미를 부츠라고 부르는 것도, 딘 윈체스터가 이 행성에 다가오는 불바다를 위협할 일을 조금이나마 해낼 가능성을 비웃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닉 마샬 안에 깃든 괴물은 무척이나 기이한, 섬뜩한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한시바삐, 당장, 창공으로 달아나서 이 대치 형국에서 사라져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오싹해졌다.

"카스티엘, 네가 있을 자리는 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너도 깨달아야 해. 반쯤 추락해서 추방된 천사 하나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그는 지미 노박의 목에 걸린 부적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정말 네가 신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너보다 앞서 무수한 이들이 실패한 영역에서 성공한다고, 카스티엘? 네가?" 갑자기 그의 날개가 카페 전체를 메웠다. 육중한 두 그림자는 지미의 눈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그림자는 인간 영혼들이 내는 빛을 완전히 가리고는 육식성의 암흑 안에 그들을 고립시켰다. "그전까지 다른 이들은 아버지를 찾은 적 없다고 생각했나? 천국과 지구를 샅샅이 뒤지지 않았다고? 이 행성의 바다와 캄캄한 해구까지 낱낱이 살피지 않았다고? 노력했었어, 카스티엘, 너보다 훨씬 나이 많고 현명하고 강한 자들이. 네가 필사적이라고 하여 네게 가치가 더 생기기라도 할 것이라 생각했나?" 닉의 손이 지미의 어깨를 붙들었다. (루시퍼의 날개가 카스티엘을 에워쌌다.) "아버지는 네게 응답하지 않을 거다. 너는 그를 위해 천국을 배반하고, 그를 위해 형제들을 살해하고, 그를 위해 죽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불바다가 되겠지. 신은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카스티엘."

형제는 불가마처럼, 틈이 벌어진 지옥문처럼 그의 은총에 열기를 끼치는 유령이었으며 그의 날개에는 붉은 화염 소용돌이가 옮아붙었다.

"넌 헛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잃은 거란다." 그는 그 특유의 어조로 다시 그에게 속삭였다. "오 카스티엘." 그의 목소리는- 순수하고 극히 아름다우며, 한없는 이해심이 안에 서려 있었다. "너와 같은 자리에 나도 서 있어."

카스티엘의 은총이 사납게 너울거렸다. 카페 창문이 덜커덕거리며 웅웅 소리를 냈다.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유리와 접시가 쨍 울리며 탁자 위를 달그락달그락 가로질렀다. 루시퍼는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서 커피잔이 한 개 엎어진 카운터에 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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